발화의 스토리를 보완하며 자료를 찾던 중 우연히 이도흠 교수님의 강연을 발견해서 듣게 되었다.
폭력과 혐오의 시대에서 어떤 태도와 마음가짐으로 소통해야할지,
여러 석학들의 연구자료를 토대로 "다른 이의 고통에 공감하고 연대하는 것은 인간이 인간다운 순간이다." 고 말한다.
감동과 동시에 오늘의 떨림과 불안감을 가라앉히기 위해, 마음의 준비를 한 것도 있다.
오늘은 무려 한달 전에 회식에서 이야기 나온 작업실의 첫 모임 시작날이었다.
무언가를 운영하거나 리더의 역할을 해본 적이 많지는 않지만 나름대로의 틀을 갖춰서 책임을 다하고 싶다.
함께 공간을 나누는 이들과 더 깊은 소통을 하고자 만들었는데 1년이 지나서야 본격적인 소통을 시작하게 되었다.
심지어 첫 시작을 2주 미뤘지만 오히려 지금이 마음에 부담 없이 시작하게 적절한 것 같다.
연재가 끝날 즈음 여유가 되면 수업과 강연도 준비하며
내부인들 뿐만 아니라 외부인들도 활발하게 드나드는 공간이 되길 꿈꾸며 카페도 정리해본다.
모임을 위해 앞두고서 방치해뒀던 카페를 급하게 가다듬었지만 조금씩 체계화되어가는 듯 하다.
모꼬지와 여러 집단상담과 모임에 참여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들이 충분히 깊이있게 오가되, 흐름을 잃거나 방향성이 모호해지지 않도록 주의했다.
다행히, 다들 진심을 주고 받는 모습을 두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들이 있어서 이런 장을 만든 사람으로서 무척 뿌듯했다.
좋은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경청하고,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자신의 내밀한 속내를 터놓을 때
나의 고민이 나만의 고민이 아니며, 모두가 조금의 상황적인 차이만 있을 뿐,
서로가 같은 지점을 바라보며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위안이 되었다.
익사하지 않기 위해 어떻게든 혼자 발버둥치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힘내라고 수면 위로 끌어올려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평소 가지고 있던 신념이지만 내가 흔들리는 순간, 이를 다시 붙잡아 주고 재확인 시켜주는 이들이 있어
정말 다행이라고, 그리고 역시 여러 사람이 교류하면 새로운 영감과 정서적 환기가 이뤄지는 것을 확인한다.
매번 다양한 모임을 했지만 온라인으로 접속 하다보면 차단되는 여러 정보들 때문에
자신을 숨기거나 과장한다던지, 분위기를 유추해야해서 여러모로 피로도가 높았는데
오프라인으로 서로의 얼굴과 몸짓, 호흡, 눈빛을 온전히 보며 더 생생하게 교감할 수 있어 좋았다.
마음에 남는 한 문장은 지우님의 조언.
"자신만의 건물을 내면에 만들어간다고 생각하며 세계관을 건축해나가는 고통을 즐기자."
이토 준지와 윤태호 작가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궤도가 떠오른다.
물이 들어오기 전부터 노를 저어왔고, 물이 들어왔으니 나아갈 뿐,
물이 빠지더라도 자신은 그저 노를 계속 저을 거라는 그런 단단한 모습들을 되새긴다.
지우님이 해온 다양한 만화들이 그녀가 그 순간에 할 수 있는 것을 부단히 시도해온 단단한 족적처럼 느껴져서
더 울림이 크게 느껴진듯 하다. 역시 엄마들은 강해.....
더 내실을 다져서 다양한 사람들이 교류하는 안전한 장을 만들어 갈 수 있기를.
생물학자 에드위드 윌슨은 사회를 형성하며 이타적 협력을 하는 유전자에 대해 말한다.
"이타적 행동이란 종족 번식 활동인 동시에 공동체를 구하려는 집단 선택"
혼자 사냥을 하는 것보다 여럿이서 함께 할 때 더 많은 수확을 할 수 있었던 선사시대부터
이타적 협력이 인간의 이기적 목적에 부합하며 이타적 협력은 진화적 관점으로 봐도 성공적이라는 것이 입증된 셈.
자코모 리촐라티 박사는
"영장류와 인간은 거울 신경세포가 있어 타인의 행동을 모바하고 감정에 공감한다" 고 했으며,
윤리학자인 피터 싱어는
인류가 발달시켜온 이타성을 4가지 부류로 나누고,
1. 혈연적 이타성 -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부모
2. 집단 이타성 - 자신의 집단 구성원을 위해 희생하는 것
3. 호혜적 이타성 - 내가 누군가에게 베푼 호의를 주고 받는것
4. 윤리적 이타성 - 유전자가 섞이지 않은 타인을 위해 이타성을 발휘하는 것.
"윤리적 이타성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이 인간의 본성을 구현하는 방법" 이라는 신념 하에 싱어 또한 자신의 월급의 상당 부분을
유전적으로 무관한 아프리카의 아이들에게 기부한다.
인간의 본성은 선하고 악한 것이 아니며 타자와 사회적 맥락에 따라 증대되는 것이다. 사회적 모순이 심화하면 이기적, 악한 유전자로 인해 폭력이 증가한다.
권력의 비대칭과 나쁜 정치, 공감력 약화와 불평등은 자신의 집단을 구성하여 동일성을 만드는 동시에 타자를 만들고,
그와 관련한 혐오 언어가 정치적으로 이용한다.
때문에 이런 사회적 문제를 해결 하기 위한 대안으로 이도흠 교수는 동양의 정신과 철학을 내세운다.
음양과 대대, 눈부처. 그리고 '정' 과 '한' 의 아우름.
사람이든 물건이든 그와 특별한 관계를 맞고 유지하는 것이 '정' 이다.
이를 끊어내면 '한' 이 된다.
정이 깊어 한이 되고 한이 깊어 정이 있다.
나에게 한을 준 사람들은 나에게 정을 준 사람들이다. 이 한을 승화시킨 것이 아우름의 문화. 즉, 한국의 고유한 미학이라고 말한다.
눈부처는
1. 주/객의 이분법을 해체하는 대대이며 (상대방의 눈동자에 내가 들어있다. 그리고 내 눈동자에 상대가 들어있다.)
2. 내 안의 불성과 타인 안의 불성이 드러나는 경계이고
(눈부처란 내 안의 불성과 타인의 불성이 하나되는 경지이다.)
3. 동일성에 포획되거나 환원되지 않는 차이 그 자체이기도 하다.
내 안의 타자와 타자 안의 나.
서로 소통, 교감하여 공감을 매개로 대대의 관계로 어우러지는 것.
타자와 나 사이의 차이 그 자체를 진정으로 받아들이며 내 집단의 동일성을 버리고 타자를 수용할 때 변화할 수 있다.
'공감의 뿌리' 설립자이자 교육자, 연설가인 메어리 고든의 실험에서 이는 효과적으로 드러난다.
초. 중학교에 아기를 초대해 아이들이 1년 동안 아기의 성장 과정을 함께 한다.
이를 3개월 간 수행한 곳에서는 왕따와 폭력이 90% 이상 감소했다.
이는 인간의 공감력은 향상 될 수 있으며
공감의 장을 만드는 것은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예수님의 사랑, 공자의 인, 부처의 자비는 모두 공감이다.
모든 성인들은 공감을 말한다.
사회의 아픔을 어루먼지는 인류의 공통된 언어는 공감이다.
타인과 약자의 아픔을 공감하고 연대할 때 인간은 가장 인간다운 경지에 이른다.
다른 이의 고통에 공감하고 연대하는 것은 인간이 인간다운 순간이다.
더 나은 사회, 공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도록 매 순간 눈부처를 떠올리며
자신의 진리를 삶에서 실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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