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몇 년 간 비약적으로 발전한 AI로 인해
창작자, 특히 일러스트레이터와 웹툰작가 등 시각 예술 창작자들의 불안과 분노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기술의 발전을 주도해온 일부 개발자들과 기업들은 ‘정보의 민주화’와 ‘오픈소스’라는 대의적 명분을 내세우며
AI가 학습할 수 있는 데이터의 범위를 무제한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흐름은 시각 예술의 저작권, 문화적 맥락, 창작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인터넷 상에 업로드된 모든 이미지들을 창작자의 동의 없이 학습 데이터로 활용하는 것을 사실상 정당화해버렸다.
그 결과, 생성형 AI가 만들어낸 이미지들 중에는
특정 작가의 화풍을 거의 그대로 따라한 그림들이 다수 존재하며,
심지어는 작가의 스타일을 악의적으로 모방한 사례도 계속해서 발견되고 있다.
일부 SNS나 플랫폼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AI로 생성된 작업물임을 표기하도록 유도하거나,
검색 필터링을 통해 사용자들이 이를 구분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업로더와 생성자의 '양심'에 기대는 수동적 조치일 뿐,
실효성에 있어서도 분명한 한계를 드러낸다.
실제로는, 공모전이나 커미션에서 생성형 AI 작업물에 아주 약간의 리터칭만 가한 뒤,
이를 자신의 창작물인 것처럼 속여 제출하는 사례가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이 부정행위는 명백한 사기와 기만 행위이며
그로 인해 기회를 박탈당하거나, 생계에 위협을 느끼는 이들에 대한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kcyNk6lJH9Y&t=322s
https://www.postype.com/@crazy1nl0ve/post/16012740
드림 기념일 커미션 넣다가 AI딸깍충에게 31만원을 사기당하기: 無月夜
요약: 드림 2500일 기념 커미 넣다 AI 그림을 커미션이라고 속여파는 X새끼한테 31만원을 주고 시간도 뜯기고 크레페 계정 정지 당하고 다른 피해자들도 있는 걸 확인함(해결완) 네... 여기다 이런
www.postype.com
웹툰은 어떨까?
코로나로 인한 웹툰 시장은 급격한 상승 곡선을 그렸으나 팬데믹이 종료된 이후,
그 성장세는 점차 한계에 도달하고 있다.
물론 이 침체의 원인을 모두 AI의 등장으로 돌릴 수는 없다.
하지만 AI가 시장에 미친 영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현직에 종사하던 작가들의 연재가 갑자기 중단되거나,
플랫폼 자체가 사라지며 스튜디오들이 인원 감축에 들어가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미 상당수의 작가들은 AI를 활용해 배경 작업과 후보정을 처리하고,
심지어는 전체 원고 자체를 AI로 생성한 뒤 리터칭만 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완성하고 있다.
대학 현장 역시 예외가 아니다.
실제로 일부 만화·웹툰 관련 학과에서는 ‘AI로 웹툰을 만드는 법’을 정규 강의로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손쉽게 고퀄리티의 이미지를 AI 로 생성할 수 있게 되면서,
학생들은 점점 더 작업에 시간과 노력을 들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고
어쩌면 더 이상 이곳에 길이 없는게 아닐까 하고 무기력한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특정 분야로 새롭게 유입되는 인재들이 줄어들기 시작하면,
결국 그 산업은 점점 협소한 고립 구조로 빠져들게 된다.
특정 분야로 새롭게 유입되는 인재들이 줄어들기 시작하면, 결국 그 산업은 점점 협소한 고립 구조로 빠져들게 된다.
이런 사안 속에서 필자는 예술가들이 나아 가야할 방향과 'AI 는 창작자를 대체하게 될까?' 라는 의제에 답을 찾고자 한다.
마침 자주 이용하던 챗 GPT 가 업그레이드 되어 4컷 만화를 생성할 수 있다는 소식에 테스트를 해 보았다.

어떤가?
위의 4컷의 만화는 필자가 챗gpt로 3분도 안돼는 시간 동안 생성한 이미지이다.
실제 완성된 이미지는 아래와 같았으며,
깨진 텍스트만을 조금 손 보았을 뿐이다.



단 두 문장만으로 완성해 낸 과정은 이러하였으며,
다른 장르를 그려볼 수 있다기에 바로 시도해 본 결과는 아래와 같았다.


기존에 만들었던 만화가 아닌 갑자기 새로운 내용으로 호러 만화를 생성해 버렸다.
(내용은 작가가 요청한 것이 아닌, 기존에 나누었던 대화로 챗GPT 가 구성한 것)
맥락을 알수 없고, 문장이 중복되며, 기승전결의 구조가 없는 그저 호러틱한 이미지의 나열이 되었다.
기존의 지문을 다시 다른 장르로 작업해달라고 요청을 해보았다.


자기 혼자 만화를 디벨롭 해버리고 있다.
(내용은 작가가 요청한 것이 아닌, 기존에 나누었던 대화로 챗GPT 가 구성한 것 2)
여러모로 의미를 모를 이미지가 생성되어버렸다.
마지막으로, 다시 그대로 지문을 긁어서 요청을 하자


이유는 모르지만 생성 정책에 어긋나기 때문에 어렵다 한다.
하지만 이쯤에 오자 필자는 흥미를 잃어 테스트를 멈추고 확신했다.
AI는 창작자를 대체할 수 없다.
물론, 짧은 테스트의 결과로 단언하기에는 논리적인 비약이 있을 수 있으며
프롬프트에 공을 들여 다듬어 본다면 충분히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얼핏 보기에 챗gpt가 만들어낸 위의 만화들은 그럴싸 하며,
이미 일본에서 aI로 그린 만화책이 ,한국에서는 AI 로 웹툰 만화 작법서 정규 강의,
AI로 만든 만화를 위한 공모전이 개최되기까지 하는데
필자는 왜 AI가 창작자를 대체할 수 없다고 확언하는 것일까?



필자가 생성한 위의 4컷 만화의 문제점을 분석한 뒤,
현재 레진코믹스에서 연재 중인 <발화> 를 제작하며 경험한 바를 바탕으로 논설해 보겠다.
생성형 AI가 만든 이미지의 해부
후반부의 두 이미지는 차치하고서라도 상업적으로 이용할 만한 가능성이 있어보이는
첫 번째 이미지를 예시로 문제점을 분석해보자.

첫번째 컷에 학생의 등과 의자가 하나로 합쳐지는 듯한 선과
어떤 포즈를 취하고 있는건지 알 수 없이 얼버무려진 왼팔.
이유를 알 수 없는 3번째 컷의 방향 전환.
갑자기 열려진 창문과 바뀐 건물구조, 반대 방향으로 이동해버린 학생.
마지막 컷 책상 모서리와 머리통 끝이 컷과 애매하게 맞닿아 겹친 불편함. 사라진 포스트잇.
괜찮게 잘 그린 만화로 보일 수 있으나
뜯어보면 컷과 배경 말풍선과 인물, 소품 등의 컷의 구성 요소부터
문제점이 한 두개가 아니다.
컷의 의미와 말풍선의 형태 등 전반적으로 만화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며
컷의 균등한 크기와 무난한 형태로 보아
어떤 내용을 중요하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인지 태도가 모호하고 흐름을 끌어가기 버거워 보인다.
이 모든 문제의 가장 핵심은 '작가의 연출 의도가 없다'. 는 것이다.
마치 지난 글에서 지휘자가 부재한 오케스트라와 같이, 영화 감독이 없는 현장처럼,
작가가 없는 엉망진창에 가까운 만화인 것이다.

잘 그려진 무언가가 제각각 조립되고 나열된 이미지일 뿐,
작품으로서의 가치와 의미, 실용성은 현저히 떨어진다.
작가는 이야기가 전달됨에 있어 독자에게 혼란을 주는 요소를 최소화 하고자 한다.
위 이미지는 그런면에서 철저하게 실패한 만화이다.
한 장만으로도 이렇게 문제가 많은데 백여 장이 넘는 페이지로
캐릭터의 일관성과 배경 및 다양성을 유지하며 백여 페이지가 넘는
중장편의 만화책을 제작하는 것은 글쎄....

(기술적으로) 힘들지 않을까?
창작은 '잘 그리는 것' 이 아니라 '무엇을 그리는가' 가 중요하다.
AI가 만든 이미지는 얼핏 보기엔 '그럴듯해' 보인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거기엔 작가의 의도나 철학, 감정이 없다.
작가로서 AI가 만들어낸 이미지를 보면
마치 입시생의 작업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입시에서는 ‘잘 그리는 법’을 배운다.
기본기를 다져서 최대한의 능숙한 기교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때 학생들이 가지는 질문은 대체적으로 이러한 종류의 것이다.
"어떻게 하면 잘 그릴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밀도를 쌓을 수 있을까?" "어떻게 주어진 주제를 잘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러나 대학생이 되고, 프로 작가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질문이 달라진다.
"무엇을 그려야하는가." "나는 왜 이것을 그려야 하는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
더 나아가서는 인물과 세계관을 담아가며 작가는 필연적으로 삶과 실존에 대한 문제에까지 다다르게 된다.
"인간이 욕망하는 것은 무엇이고 갈등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는가?"
"인간은 어떤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가야 하는가."
"세상은 어떠 해야하는가."
"왜 살아가야 하는가."
그저 '잘 그리는 것' 이 아니라 "무엇을, 왜, 어떻게 그릴 것인가" 를 고민하게 된다.
타인에게 평가받고 점수를 잘 받기 위해 애를 쓰는 단계에서 벗어나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며 주도적으로 그리고 능동적으로 사고하는 사람만이 작가로 거듭나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어떤 작품을 그려야 하는가, 그것이 세상에 어떻게 작동할 것인가.
자신의 삶과,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 그 속에서 내가 갖추어야 할 태도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며
이에 맞는 '적합한 이미지'를 찾아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과장과 생략, 압축을 통해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나간다.

분명한 태도, 목적과 기획을 가진 만화들은
뛰어난 지휘자를 둔 오케스트라처럼, 세계적으로 극찬 받는 감독이 제작한 영화처럼,
독보적인 만화 문법과 언어를 가지게 된다.

자신만의 기준이 확고한 이는 내면이 단단하기 때문에
타인과 환경 등 외부적인 요소에 비교적 덜 흔들리게 된다.
이는 말하지 않아도 작품을 통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우리는 그런 작품들에서 특별함을 발견하게 된다.


세계관은 우연이 아니라 축적에서 만들어진다.
창작자의 작업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사람의 ‘세계관’이 보이기 시작한다.
새로운 작품을 만들 때마다 다른 듯 보이더라도 일관된 주제가 반복과 변주를 통해 확장 되어 나간다.
작품을 만들어 나가며 세계관을 더 굳건하게 축적해 나간다.
AI 를 이용해서 지속적인 세계관을 구성할 수 있을까?
사용자에 의해 주어진 프롬프트에 반응해서 그럴듯한 이미지를 생성할 뿐.
AI는 의지를 가지고서 지속적인 축적을 할 수 없다.
그렇다면 AI를 이용하는 사람은 어떨까요?
길지 않지만 세상을 30 년의 살면서 깨달은 진리는
노력이 없이 쉽게 얻어진 것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일관성 없는 작업, 불쾌한 골짜기가 담긴 결과물, 그 모든 것을 마치 '자신이 만든 것처럼' 우쭐대는 태도.
이런 작업을 하고, 이를 자랑스럽게 보이는 사람에게는 어떤 신뢰가 갈까?
아무리 정교하고 화려하고 세련되어 보이더라도 해도 사람들은 AI 이미지에 대해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낀다.
당신은 SNS나 각종 플랫폼에 도배된 AI 이미지들을 보며, 감탄하거나, 그 이미지를 만든 이들을 예술가로 인정한 적이 있는가?
우리는 이를 그저 무료 이미지, 아무 데나 써도 되는 '스톡 이미지' 정도로 소비할 뿐이다.
노력과 고뇌가 보이지 않는 결과물에 아주 즉각적이고 가벼운 흥미만을 보일 뿐,
우리의 시선도 마음도 결코 오래 머무르지 않으며 오히려 거부감이 든다.
https://youtube.com/shorts/X3Caq8_Q0r0?si=2mzQdx8bNO1-p3M5
아무리 빠르고 효율적으로 원하는 이미지를 가질 수 있더라도,
이미 일선에서 활동하고 있는 프로 작가들이
AI와 AI를 사용하는 이들의 결과물에 크게 개의치 않는 것도
이 공허한 본질에 대해 직관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AI 이미지를 자신의 작업에 사용하고
이를 소개하는 이들의 컨텐츠에 호기심을 가지게 되더라도 단발성 이벤트에 지나지 않는다.
해당 컨텐츠의 덧글에서 보이는 대로 한계는 분명해보이며,
노력과 애정 없이 만들어진 결과물은 그저 일회성에 가까운 장난감에 불과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I1V713Nei9c
무수히 많은 이미지들을 무단으로 학습하여 생성된 결과물들로 스스로를 ‘AI 아티스트’라 칭하거나,
자신의 편익을 위해 AI로 생성한 이미지라는 사실을 숨긴 채 수익을 창출하려는 이들은
이미 시작 지점부터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걸고 당당하게 활동할 수 없다는 점에서,
자신의 명예가 실추된다는 것을 은연 중에 인정하는 것이다.
그들 스스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명예롭지도, 가치 있지도 않다는 사실을 분명 잘 알고 있다.
타인의 재능과 노력을 위에 올라서서, 기술과 조작된 이미지 뒤에 숨는 것을 택한 사람들이 하는 것은
오랜 시간 예술가들이 축적해온 노력과 훈련, 감정과 철학의 총체로서의 ‘창작’을 폄훼하는 일이며,
동시에 자신이 그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고백이자,
더 나아지고자 하는 노력과 열정이 사그러들어 삶에 대한 애착을 포기한 비관성을 보여준다.
노력과 열정 대신 즉각적인 만족만을 좇다가 생각할 힘을 상실해버린 초라해진 자아는
스스로가 감내해야할 숙제가 될 것이다.

모든 기술은 반드시 양면을 가진다.
AI라는 도구가 예술 자체를 대체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노동 집약적인 창작 환경의 과중한 업무를 덜어주는 보조 수단으로서의 활용 가능성은 충분하다.
실제로 웹툰 업계는 반복적이고 기계적인 작업이 상당히 많다.
예를 들어 선 따기, 배경 배치, 배색, 1차 명암과 같은 단순 반복 작업은 AI에게 맡기고,
창작자가 더 많은 사고를 요하는 지적인 활동에 집중할 수 있다면
AI는 오히려 예술가의 ‘손’을 해방하는 보조적 파트너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분명 무언가를 잃게 될 것이다.
그 ‘무언가’는,
필자가 오직 수작업을 통해 찾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이에 대한 해답을, 거꾸로— 수작업으로 작업하며 얻은 경험들로부터 역으로 도출해보고자 한다.
예술적인 깊이와 가치는 어떻게 생겨나는가.
아크릴, 유화, 수채화, 색연필 그리고 펜촉과 잉크.
비효율적이고, 불편하고, 실수하면 돌이킬 수 없는데도 왜 이들은 수작업을 고수하는 것이며,
왜 사람들이 그 런 영상들을 찾아보며 그 안에서 이상하리만치 큰 만족감과 정서적 충족감을 느끼는 것일까?
레진코믹스에서 연재 중인 <발화> 는 수작업으로 만화용지에 펜촉과 잉크를 사용해서 작업한 흑백 만화이다.
죽어가는 출판만화 시장을 대체하여 웹툰이 주류 시장이 된 현대에
이미 네이버에서 풀컬러 디지털 작업을 연재했던 이력이 있는 필자가 다시 수작업 흑백 출판 만화를 선택한 것은
꽤나 독특한 행보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rqSifD5cVNQ
발화는 가정내에서 일어난 성폭행의 트라우마를 가진 주인공의 심리를 중점적으로 묘사한 사이코 드라마이다.
작업에 들어가기 앞서, 필자는 다시 펜촉을 잡기로 결심했다.
디지털 기기는 효율과 속도, 생산성을 높이지만
연필의 사각거림와 종이의 질감과 두께 감촉, 그 결을 가르며 새겨지는 잉크의 점성,
서늘한 펜촉 끝에 담긴 미세한 손의 떨림, 먹의 농도에 따른 우연한 효과는 오로지 수작업으로만 느낄 수 있기에,
더 깊은 몰입을 위해 수작업이어야만 했다.
혹자는 이러한 필자의 선택을 그저 방황이라고 하였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발화의 프롤로그를 보며 말했다.
"이런 어둡고 불편한 만화 사람들은 싫어해.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시장과 장르를 분석해 봐. 돈이 되는 걸 해"
확실히 쉽고 가볍게 접할 작품은 아니다.
어딜 가서 작품을 보여줘도 반색하는 이는 없었다.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모두가 아니라고 해도, 나는 이 작품이 가진 힘을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믿었다.
움츠러들지 않기 위해, 포기하지 않기 위해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을 찍어기 시작했다.
릴스로 제작해 수작업으로 만화를 제작하는 과정을 찍어 올리면서 새로운 가능성이 피어올랐다.
https://www.youtube.com/watch?v=JAsq-3S20Kg&t=8s
https://www.youtube.com/watch?v=I2KOZrbKMoM
2021년, 300명이던 팔로워 숫자가
2025년 현재 25만 팔로워에 도달했다.




그리고 이런 전통적인 방법을 고수하는 모습을
장인 정신을 가진 진정성 있는 작가라며 좋게 봐주시며 응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 구독자님들 덕분에
내가 믿는 가치가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작가의 호흡, 숨결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작업의 흔적에서 사람들은
살아있는 존재의 감정을 느낀다.

800여 장. 쌓여가는 종이의 무게만큼,
거짓되지 않은 날 것의 감각들이 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온전한 몰입과 집중으로 정서적인 충족감이 차오르고,
세상에 하나뿐인 실물 작업의 유일한 원본의 존재감과 물성은
예술적인 깊이와 가치를 더 확실하게 각인시킨다.
스스로 만드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자신에 대해 잘 파악하게 되었다.
몰입감, 만족도, 신체적 정신적 건강 모두 디지털 작업을 하던 시기보다 월등하게 좋아졌다.
모든 플랫폼에 거절당하고, "너를 갉아먹는 만화" 라는 소리를 듣던 발화는
국내 3대 웹툰 플랫폼인 레진코믹스에서 정식 연재를 하게 되었으며,
다가오는 6월, 발화의 1부 출간을 앞두고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만화 연출 관해서 쓴 글들에 보고 작법과 연출에 관한 도서 출간 제의가 두 건이나 들어왔으며,
온라인 강의와 오프라인 강연, 외주와 광고, 협업 및 전시 제안 들이 답장하기 벅찰만큼 쏟아졌고,

많은 지망생 및 독자님들로부터
"어둠에 익사하는 제게 숨을 불어 넣어 주는 작품" "위로를 받았다." "살아가고 싶어졌다." "흑백 만화를 하고 싶어졌다."
는 뭉클하게 만드는 메세지들을 받았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필자를 의심에 빠지게 했던 질문들에 대한 분명한 답을 가지게 되었다.
"이미 대단한 만화들이 있는데,
발화로 뭘 보여주고 싶어서, 이렇게 힘겹게 붙들고 있는건가.
이런 실력으로 만든 엉성한 만화, 의미가 있을까?
내가 왜 굳이 만들어야 하지?


인간 고유의 결핍이 곧 예술의 씨앗
사람들은 단지 잘 그린 무언가를 원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나와 다를 바 없는 누군가가,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삶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꿋꿋이 헤쳐나가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기계가 인간보다 더 빠르게 달릴 수 있다고 해서, 우리는 마라토너를 비웃지 않는다.
AI가 시를 쓴다고 해서, 시인이 언어로 쌓아올린 감동과 사유의 깊이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대량 생산으로 쏟아지는 수많은 패스트푸드와 밀키트가 있지만
파인 다이닝을 운영하는 셰프들의 철학과 진정성을 고액을 지불하고서라도 맛보고자 한다.
왜일까?
사람은 인간다운 것을 사랑한다.
우리는 아주 짧은 시간만에 사람의 온기, 정서, 감정이 깃든 행위를 감지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삶과 감정을 투영할 수 있는 ‘진짜’ 무언가를 찾아낸다.
예술은 그런 인간다운 시도들의 기록이고,
자신의 불완전함을 드러내는 고백이고,
용기를 내어 세상에 자신을 표현한 투쟁의 흔적이다.
우리는 그 흔적을 통해 위로받고, 살아갈 힘을 얻는다. 누군가 진심을 다할 때, 우리는 그 진정성에 감동한다.
그리고 진정성은 인간 고유의 결핍에서 나온다.
우리는 결핍과 한계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는 인간의 의지를 보고 싶어한다.


그리하여 이제 다시 결론에 다다랐다.
AI는 창작자를 대체 할 수 없다.
여기까지 읽은 당신의 생각은 어떠한가? 납득이 되었는가, 아니면 여전히 석연찮은 부분이 있는가?

인간은 필연적으로 결함을 가진채로 태어나 살아가게 된다.
부족하고 불완전하지만 그때문에 더 나아지고자 발버둥치는 움직임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다.
그 과정이 때론 비효율적이고 비논리적이고, 실패와 상처투성이일지라도,
그 모든 시도 자체가 인간적인 동시에 예술적으로 발화해 나가는 여정이다.

AI를 법으로 강하게 규제하고 제지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면, 이제 우리는 두려워하고 걱정하기보다,
AI와의 경쟁으로부터 ‘무관해질 수 있는 창작자’가 되는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
기술과 트렌드가 빠르게 바뀌는 시장 속에서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기 위해서는 질문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그리고자 하는가?
어떤 것을 남기고 싶은가?
나는 왜 예술을 하는가?
이 질문들에 스스로 대답할 수 있을 때,
창작자는 흔들리지 않는다.
소신 있는 걸음은 느리더라도, 결국 가장 멀리 나아간다.
진짜 예술가는, 자신의 목소리로 파동을 만들어내어 타인의 마음에 잔잔하게 가 닿는 사람이다.

예술은 선택받은 소수,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예술은 삶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내면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감각이자 본성이다.
자신 안에 잠들어 있는 씨앗을 발견하고, 그것이 싹을 틔워, 열매를 맺고,
한 그루의 나무로 자라나기까지는
끊임없는 노력과 성찰, 그리고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

ai와 달리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결핍과 불완전함으로부터 피어나는 예술의 힘은 그 무엇보다도 견고하다.
그 힘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예술을 꿈꾸고, 바라고, 흠모하는 이들의 가슴 속에는
결코 쉽게 꺼지지도, 꺾이지도, 뽑혀나가지도 않는 생명처럼 그 열기가 자리 잡고 있다.
단 한 번이라도,
강렬한 감동과 벅차오름을 느낀 적이 있다면,
당신 또한 자신만의 세계관을 만들어갈 수 있는 예술가의 씨앗을 품고 있는 사람이다.
예술가를 꿈꾼다면,
언젠가 한 그루의 단단한 나무가 되어,
자신만의 열매를 맺게 되는 날까지,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을 믿으며 나아가기를.
모든 결핍과 상처와 흉터를 끌어안으며, 세상에 깊게 뿌리내려 자신을 피워내기를.

https://www.lezhin.com/ko/comic/inflame
발화 - 영재영 - 웹툰 - 레진코믹스
가족이 불편하다. 친오빠가 싫다. 이대로... 내가 사라졌으면 좋겠다. 조형예술학과에 갓 입학한 대학생 "정인혜"는 룸메이트 "안수진"과 함께 정신없는 신입생 생활을 보낸다. 구김살 없이 해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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